출처는
http://hp.kutikomi.net/xxx-title원래는 可愛さ余って고, 보통은 [사랑한 나머지 미워하는]의 의미로 더 많이 쓰는 듯 하지만 전 그냥 단어 그 자체에 집중하기로 했어요'ㅂ' 뭐 내용상 완전 직역으로 너무 귀여운 나머지, 혹은 사랑스러운 나머지...가 더 어울리는 듯 하지만 사실 중요한건 제목이 아니라 내용이잖아요?^ㅂ^
처음쓰는 더블에쓰...인데 시작도 제 마음의 고향 개말도 아니고 규민.
정민이 캐릭은 널부노 뮤비에서 본인이 천사를 희망한다길래 원래 예정보다 더 천사처럼^^* 표현했어요. 사실 자꾸 개말로 빠지려고 해서 수습하느라 힘들었네요-_-
암튼 고고
규종의 아침은 언제나 같다.
6시반에 맞춰놓은 알람이 무색하게 늘 6시에 일어나 라디오를 켜고 샤워실로 향한다. 씻고 나와 원두를 내리고 거울로 향해 머리의 물기를 털고 머리를 빗으며 알람이 울리기를 기다린다. 핸드폰 알람의 벨소리로 지정해놓은 곡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곧 아침을 알리는 소리에 규종은 잠시간 같은 곡을 흥얼거리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알람을 끈다.
뒤돌아선 규종은 다시 부엌으로 향한다. 토스트기에 식빵 2개를 꾹 집어넣고 후라이팬에 기름을 둘러 적당히 퍼지게 한 후 능숙하게 한 손으로 달걀을 깬다. 한켠에 베이컨을 올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푱-하는 소리와 함께 구워진 식빵이 올라오고, 달걀과 베이컨도 다 익었다. 고소한 향이 집 전체에 퍼지며 곧 거기에 커피향이 추가된다.
규종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잠시 고민한다. 오늘은 무슨 쨈을 발라 먹을까? 오늘은 월요일. 한 주의 시작이니 상큼한 게 좋을 것 같다. 얼마전에 선물 받은 마멀레이드를 꺼낸다. 규종이 좋아하는 노란빛이 선명하다. 이거 먹고 오늘 하루도 힘내야지.
짧은 식사 시간을 마치고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사실 그다지 준비할 만한 것은 없다. 여자들처럼 화장을 하는 것도 아니고 복장은 언제나 수트만 입어야 하기에 아침마다 무얼 입을까 고민할 일도 없다. 넥타이를 고르는 건 조금 고민되는 일이지만 착실한 규종은 전날 미리 정해놓는 타입이기에 망설임 없이 붉은 빛의 심플한 넥타이를 꺼냈다. 벌써 몇 년째 똑같은 아침을 맞고있기에 넥타이를 매는 손놀림이 능숙하다.
다시 거실로 나오자 계속해서 흘러나오던 라디오에서 정확하게 일기예보가 나온다. 오늘 하루 쾌청, 전형적인 봄 날씨, 봄 소풍이라도 가고싶은 날이네요. 아나운서의 말이 끝나자 규종도 베란다 쪽 창문을 내다본다. 정말 말 그대로 봄이었다.
몸을 돌린 규종은 라디오를 끄고, 가방을 챙겨 구두를 신는다. 아무도 없는 집을 향해 말한다. "다녀오겠습니다."
출근길을 나서는 규종은 엘리베이터를 타면서부터 인사를 하느라 바쁘다. 규종은 인근 주민들 사이에 [결혼하고 싶은 사람 1위], 혹은 [사위삼고 싶은 사람 1위]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규종은 아직 결혼 생각이 없다. 평수도 작고 전세긴 하지만 따로 살 집도 있고, 연봉도 나이를 생각하면 괜찮은 편이고, 외모도 평균 이상에 가정적이고 매너까지 좋은 편이라 선자리가 넘치는 규종이었지만 늘 거절해왔다. 그의 부모도 딱히 결혼에 구애되는 타입은 아닌터라 마음대로 하라는 식이다. 사실 규종은, 운명을 믿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대리님."
규종은 다른 동료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서 업무 준비를 하다보면 어느새 저-쪽에서 "오픈시간입니다-" 라는 말과 함께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고, 그날의 첫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규종의 직업은 은행원이다. 옆에 나란히 앉아있는 여직원들과 같은. 하지만 규종이 일하는 지점은 세금 계산이나 소액의 입출금은 전부 자동화가 되어 기계에게 맡기고 있고, 직원들이 하는 일은 금융상품을 소개하여 새로운 거래를 트거나 고액의 신용대출 등을 해주는 것이었다. 뭐, 본점에서 몇몇 지점을 대상으로 시험삼아 운영해보는 거라나? 물론 규종은 '일반적인' 은행 업무를 위해 창구에 앉아 한다고 해도 전혀 거리낄게 없었지만 -실제로 신입때 해보기도 했고- 지금 업무도 나름대로 보람되어 좋았다. 자신이 소개해준 상품으로 점점 돈을 불려나가는 부모님뻘의 어른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달까. 물론 규종의 도움으로 돈을 늘려나가는 건 그런 어르신들 뿐만이 아니라 인근에서 일하는 젊은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아가씨들 중 몇몇은 은행이 무슨 미용실도 아닌데 직원을 지명해서 상담하겠다는 몰지각한 행태를 보이기도 했으나 그런 직원은 과장님이 알아서 처리해주어 고마울 따름이었다. 바로 이런 상황에.
"아, 거 진짜. 김규종 대리 과로사시킬 일 있어요? 사람들이 질서를 지켜야죠 질서를. 자기 순서되면 자기 번호 찍힌데 가서 일을 봐야 뒷사람도 일을 볼 거 아니에요. 안그래요?"
"그럼 과장님이 상담해주시면 될 거 아니에요오--"
"제 업무 아닙니다."
그렇다. 과장의 업무는 창구 직원들의 관리와 각종 서류의 승인, 그리고 부장과의 연계인 것이다. 오히려 부장급이 되면 일명 'VIP 고객'을 맞이하느라 바쁜데 과장은 중간직이라 인력관리에 더 치중되어 있다. 그리고 저렇게 칼같이 내 일 아니라고 모른척 하는 과장의 이름은 김현중으로 역시 수려한 외모와 알고보면 엘리트로 소문나 있으나 그것보다 성질이 개같은 것으로 더 유명했다. 처음 이 지점에 현중이 부임해 왔을 때는 그야말로 문정성시를 이룰정도로 은행 가득 구경꾼으로 가득했으나 다들 한 번씩 당하고는 더이상 접근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예의바른 규종이 들어왔으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어쩌면 예상된 일이었는지 모른다.
"과장님, 늘 감사합니다. 팬이에요."
"...넌 대학때부터 팬이라더니 아직도 그 소리냐. 너 나만 좋아하다 장가 언제갈래?"
".......그래도 팬이에요. 그리고,"
"운명의 상대가 나타날거라고? 이거나 결재 했으니까 갖고 가."
열심히 일하다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규종은 늘 그렇듯 현중과 식사를 했다. 현중은 아보카도 롤을 먹었고 규종은 새우볶음밥을 먹었다. 남은 시간동안 커피를 마시며 규종은 또 열심히 현중의 찬양을 했고, 현중은 익숙하다는 듯 웃어 넘겼다. 대충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형,-사석에선 이렇게 부른다- 앞으로 경제가 어떻게 될까요?"
"뭘 어떻게 되기는. 지난 번에 그렇게 지랄을 했으니 이제 좀 닥치고 얌전해져야지. 근데 이번 분기는 애초에 5%성장도 글렀고 짜장면도 올랐는데 그놈의 목을 쥐어비틀기는커녕 더 키워야 된다고 난리니 이거 빨리 이 나라를 떠야지 안되겠어."
"형...형은 정말 천재에요."
"나 진짜 뜬다."
"안돼요. 저 놔두고 가지 마세요. 저 행복해지는거 보셔야죠."
"나도 좀 행복해지고 싶다만."
"그럼 이렇게 해요. 제가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우리 셋이 한국을 떠요."
"...셋이 살자고?"
"네. 안돼요?"
"그럼 난 평생 독수공방하란 소리냐?"
"형은 혼자서도 완벽하잖아요. 그리고 전 형도 없으면 안돼요."
"이 새끼가 미쳤나. 그래, 살자 살어. 너랑 니 운명이랑 나랑 셋이."
"와아, 형은 역시 멋져요."
그렇다고 이 두 사람 사이에 사랑, 아니 흔히 '남녀'가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싹튼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규종은 알에서 막 깨어난 오리새끼였고, 현중은 그 오리엄마였다. 좀 많이 잘난 오리. 아, 백조라고 하면 되겠다. 어쨌거나 현중은 사실 대인관계를 많이 귀찮아하는 타입이라 누구와 사귀는 것도 귀찮아했는데 규종만큼은 예외였다. 왜냐하면 현중이 아무것도 안해도 혼자서 잘 하니까. 그래서 정말 규종이 그놈의 운명의 상대인지 뭔지를 찾아내서 셋이 살자고 하면 그럴 생각이다. 아무리 잘난 현중이라도 혼자 늙는건 재미없으니까. 사실 규종이 운명의 상대를 못찾아도 언젠가는 현중 자신이 데리고 살 생각이었다. 역시 혼자 늙는건 재미없으니까.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셋이 살아도 좋다고 마음 먹은 것까진 좋은데 그 상대방이 싫다고 하면 어쩌지?
"그럼 옆집에 나란히 살아요."
"어, 그래."
"근데 제 운명의 상대면, 분명 그 사람도 형을 좋아할거에요."
이런 비슷한 대화를 매일같이 반복하며 업무로 복귀하는 두 사람. 규종은 이자율 전표를 확인하기 시작했고, 현중은 오후 주식 시장을 파악하기 위해 인터넷에 들어갔다. 여기까진 평소와 같았다. 그런데,
누군가 다가오는 것 같아 고개를 든 규종의 눈에 까만 복면이 들어왔다. 까만 복면. 티비에서나 보던. 그래, 티비에서 주로 '은행 강도'들이 착용하고 있던. 그리고 그 누군가는 티비와 똑같은 말을 외쳤다.
"다들 꼼짝말고 엎드려------------!!!!!!!!!!!!!!!!!"
여기서 규종의 상상과 틀린 점이 있다면 강도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어렸다는 것이다. 보통 이런 상황에선 담배 10갑은 피운 듯한 아저씨 목소리 아니었나? 규종은 비명을 지르며 엎드리는 여직원들을 한 번 훑어보고 마지막으로 뒤에 있는 현중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현중도 조금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작게 입모양으로만 말했다. '이거 몰카냐?'
"거기 남자 둘!! 허튼 짓하면 죽어!!!"
강도가 칼날을 번쩍거리며 다가왔다. 규종은 순간 눈을 의심했다. 커터칼? 갑자기 규종의 10대 시절에 대 유행하던 로봇만화가 떠올랐다. 거기 나온 로봇도 커터칼을 무기로 썼었다. 이거랑 크기부터 다른.
"푸훗"
당연하게도 뒤에서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강도는 당황한 듯 했다. 칼을 든 손이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경비를 재운 것까진 좋았는데 말이지.
"우, 웃어? 진짜 죽인다!!"
가만히 놔두면 현중이 박장대소하다 진짜 칼에 찔릴 것 같았다. 아무리 커터칼이라도 잘못 찔리면 아프고, 현중이 다치면 규종 본인도 속상하고 또 입원이라도 하면 일할 때 귀찮게 구는 사람들을 내쫓아 줄 사람도 없고...그래서 규종은 용기를 내기로 했다.
"저,저기..저...어디사는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대화로 해결해요.네?"
"내..내가 누군지 알고 얘기하자는 거야 나 강도라고! 돈이나 내놔!!"
"아니, 강도이신건 알겠는데요, 그래도 너무 다짜고짜 그렇게 나오시면 저희도 곤란하고..인사라도 해요. 전 김규종이라고 해요. 강도님은요?"
미쳤다. 뒤에서 현중이 중얼거렸다.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몇 명 없는 손님들도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상황이 너무도 비상식적이라 지금이 비상벨을 누를 절호의 기회였음에도 아무도 그럴 생각을 못했다. 다만 저 '강도님'의 다음 말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그 강도님이 복면을 벗었다. 그리고 은행 안의 모두는 다시 할 말을 잃었다.
"저기..전 박정민이라고 하는데요..."
솔직히 은행 직원들도, 손님들도 미남에는 익숙해져있었다. 규종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어디에서 김현중 같은 얼굴을 이렇게 서민적인 장소에서 만난단 말인가? 그런데 방금 참으로 예의바르게 자신을 소개한 규종에 감복했는지 조심스럽게 복면을 벗고 자신의 이름을 박정민이라고 한 이 초짜 강도는 오묘한 느낌의 미소년이었다. 그래, 소년.
"내 운명...................."
"네?"
"아, 아니아니. 그래서 강도님, 아니 정민군은 왜 이런 무섭고 슬픈 일을 저지른거에요? 아직 나이도 어린 것 같은데."
현중은 들었다. 지 운명이라고? 쟤가? 뭐 얼굴은 나쁘진 않은데, 아무리봐도 남자앤데? 하지만 싫진 않았다. 정말 규종의 말이 진짜인지 규종의 운명인 그 남자애는, 현중의 마음에도 들었다. 옛날 첫사랑에 성공해서 저런 아들 하나 낳았으면 좋겠다 싶은.
정민은 잠시 머뭇거리다 입술을 오물거리며 대답했다.
"그게...물론 돈이 없어서요."
"아-그렇-구나- 하긴 그러니까 강도짓하겠지. 내 정신도 참. 그래도 정민군같은 학생이 이런..이런 위험한 거 들고다니면 잘못하다 아야하고 그래요. 그러니까 그건 아저씨..아니아니 형 줄래요?"
"이거 주면 저는 뭘로 강도짓해요, 아저씨?"
약간 울먹거리는 말투로 규종을 올려다보며 커터칼을 주면 자신은 뭘로 위협하냐고 당당하게 묻고있는 정민을...모두는 기가 차서 바라봐야 하겠지만 은행 내의 모든 사람들은 어느새 '하긴..강도가 무기 들었으니 강도지 김규종 대리도 저걸 뺏냐.' 하는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있었다.
반면 규종은 다른 걸 생각하고 있었다. '형이라고 부르라는 의미였는데...!!'
"음..그럼 그건 계속 정민군이 갖고 있어요. 대신 날은 안으로 넣고. 참 점심은 먹었어요? 형은 새우볶음밥 먹었는데."
"밥...먹었어요.......삼일전에.............."
안됐다.......!
이제 눈물을 글썽이는 직원까지 나왔다. 그 때 갑자기 다른 직원이 뛰어나가 은행 앞에 [죄송합니다. 잠시 업무 중단합니다.] 푯말을 내걸고 문을 잠궜다. 덕분에 소스라치게 놀란 정민이 그 자리에서 울어버려 은행 안은 다시 일대 소란이 일었다. 졸지에 애 울린 꼴이 된 그 직원은 자신의 책상에 몰래 숨겨둔 빵을 꺼냈다.
"잘..먹겠습니다..."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빵을 먹기 시작하는 정민의 모습에 다시금 사람들은 크게 감동하며 이렇게 인사성도 바르고 예쁜 아이가 대체 이런 일을 꾸미다니 이건 필시 무언가 사정이 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자, 이거 형이 좋아하는 딸기 우유인데 이것도 같이 마셔요."
"와..저 딸기 우유 좋아해요. 한 번밖에 못 먹어봤지만... 잘 먹을게요, 형."
드디어 형이라고 불렀어...!!
규종은 춤이라도 추고 싶었지만 아직은 이성이 남아있기에 애써 참았다. 대신 휴지를 뽑아 정민의 입가에 묻은 크림을 닦아 주었다. 크리넥스를 타고 전해지는 볼의 온기가 따뜻했다.
정민이 빵을 먹는 동안 규종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만 원짜리 지폐를 한다발 꺼내왔다. 열심히 빵을 먹던 정민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규종을 쳐다봤다.
"형이 여기 은행에서 오래 일해서 돈 되게 잘 세는데, 진-짜 잘세는데 보여줄게. 만약에 실수해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돈은 다 정민이꺼. 알겠지?"
끄덕끄덕.
어느새 반말로 바뀐 규종의 말투는 미쳐 눈치채지 못한 채 그저 돈을 주나보다, 하는 마음에 기쁜 정민이었다. 사실 은행에서 일하며 돈을 떨어뜨린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것이지만 어쨌거나 정민은 그대로 믿었다. 물론 규종이 실수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보지못한 나머지 사람들만 '저건 또 왜 저래.'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다 다시 시선을 돌려 기대의 눈빛을 가득 담은 정민의 얼굴에 저절로 미소를 짓게되는 것이었다.
"자,봐봐. 하나,둘,셋,..........사십칠,.........."
당연히 규종은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돈을 세어나갔다. 딸기 우유에 빨대를 꽂아 마시며 뚫어져라 돈만 쳐다보던 정민의 눈빛이 점차 실망으로 물들었다. 규종은 어느새 70만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육십팔..육십구..어어어어-------------"
규종은 정말 누가봐도 '일부러' 했다는 것이 티가 날 정도로 손을 떨더니 들고 있던 만 원 뭉치를 우수수 떨어뜨렸다. 딱 봐도 약 150만원 정도 되는 양을. 정민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이거 이제 다 제꺼에요?"
"응! 그럼! 형은 약속 지키는 사람이야!"
"와아, 형 최고!! 이름이 뭐랬더라? 아, 규종이형, 사랑해요~!"
박수와 환호.
대박난 주식시장도 아니고 동네 은행에서 이런 소리가 터져나올 줄은 아마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민은 얌전하게 먹던 빵과 우유를 내려놓고 꼼꼼히 돈을 줍기 시작했다. 그 손길이 어찌나 바지런하고 똑부러지는지 내려다보면 할머니 한 분은 "우리 손자랑 바꾸고 싶네." 라고 할 정도였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정민이 손에 든 돈을 조심스럽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저..이거 진짜 가져도 되는거에요? 저 이제 곧 경찰 아저씨들이 잡아가는거 아니죠?"
"아냐아냐아냐아냐! 물론 아니죠 지점장님? 이거 제가 딱 135만원 집었으니까 제 월급에서 까주세요. 그럼 됐죠?"
사실은 165만원이었지만 그건 그렇다고 치고. 밖에는 은행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여전히 경비는 잠들어있고, 은행 내에 설치된 CCTV가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다 촬영한 이 상황에 은행 돈을 눈뜨고 강도에게 뺏기면서 태연하게 본인 월급에서 제하라는 직원이나 그걸 허락하는 지점장이나 무언가에 홀린 사람들 같았다. 정확히는, 박정민이라는 소년에게. 누구도 움직일 생각을 못하는 은행 안에서 유일하게 움직인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그 유명한 김현중 과장이었다.
"지점장님, 저 일 그만 두겠습니다."
"..기,김현중 과장? 대체 그게 무슨..."
"야. 김규종 너도 그만 둬. 얘도 그만 둔대요."
"아니 갑자기 왜..."
"책임은 져야할 거 아니에요. 어쨌거나."
그 말에 규종도 급히 자리로 돌아가 짐을 챙겼다. 이렇게 급하게 나갈 줄은 몰라서 인수인계를 어떡해야 하나 고민하는 규종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듯 현중이 지점장에게 두 개의 서류뭉치를 내밀었다.
"이게 제꺼 인수인계용 매뉴얼이고요, 이쪽이 김규종 대리꺼. 어차피 얘 일은 다른 직원들도 다 같이 하니까 많이 안해도 될 거 같아서 축약형으로 만들었어요."
"과장님 이걸 대체 언제..."
"내가 맨날 말했잖아. 니 운명인지 뭔지 만나면 한국 뜬다고."
그렇게 간단하게 규종은 현중과 함께 일을 그만뒀다. 은행에서 마련해준 봉투에 돈을 집어넣고 한 손엔 복면을 든 채-칼은 복면으로 감싸 숨겼다- 은행 밖으로 나온 정민은 눈이 부신 듯 봉투를 든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러다 곧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못가 멈춰섰다.
"형들은 언제까지 따라올거에요?"
"남이사."
"이 형은 아까부터 말도 무섭게 하고. 형이랑은 말 안해요. 규종이 형이랑 할거야."
"음- 나랑 무슨 말?"
"형, 나 때문에 회사 짤린거에요?"
"어, 그건......."
"그래. 너 때문에 짤렸다."
"이씨- 형이랑은 말 안한다니까요! 규종이형, 진짜 그런거에요?"
"응. 형이랑 이쪽..현중이형이라고 하는데, 이 형이랑 정민이 때문에 회사 짤렸어."
"......................미안해요. 이 돈 도로 돌려줄게요. 같이 가서 빌어요. 네?"
금방 정민의 눈이 젖어들기 시작했다. 규종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정민의 손을 잡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생각보다 정민의 키가 컸기에 그냥 서서 손을 잡고 몸을 낮춰 정민과 눈을 맞췄다.
"그것보다...정민이 가족은 누구누구 있어?"
"....저 혼자에요. 그러니까 이러죠. 저는 뭐 이러고 싶어서 이런 줄 아세요?"
"음..그럼 이렇게 하자. 형은 사실, 정민이 보자마자 반했거든? 그러니까 정민이가 형은 아까 정민이가 나쁜 짓 하려던 거 책임지고 막았으니까, 정민이는 평생 형 책임지고 같이 살아 줄래?"
"저 남잔데요."
"나도 알아. 하지만 나는 이것도 알거든. 너와 내가 운명이라는거."
정민은 한참동안 규종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까 은행에서 있었던 일을 다시 되새겨봤다. 처음 은행에 들어섰을 때, 열심히 일하던 그를 보았을 때, 그리고 자신을 향해 이름은 김규종이라며 웃어보였을 때.
"형, 나 버리지 말아요."
규종은 그냥 잡았던 손을 놓고 다시 팔을 뻗어 정민을 꼭 안아줬다. 그리고 그 둘을 다시 현중이 끌어안았다.
+++이건 아마 후일담. 사실 좀 더 길게 쓸까 하다가 더 붙이면 넘 사족같아서 그냥 분위기만 전달하는 걸로.
"여권 챙겼어? 짐은 이게 다 싼거야? 출발하는 날 이게 뭐야--!"
"형, 이건 좀 실망이네요. 오늘은 우리 세 식구가 새출발하는 역사적인 날인데."
"아 뭐-난 뭐 다른 친구 없는 줄 아냐? 걔네랑 송별회 하다 늦잠도 잘 수 있지! 그리고 박정민 너 은근슬쩍 반말이다? 내가 니가 좋아죽는 김규종이 떠받들어 모시는 김현중이거든? 너 나한테 이러면 안돼. 이게 진짜 그 때 콩밥을 먹어야 정신을 차렸지?"
"그러니까 빨리 준비하라구! 나랑 규종이형이랑 둘 다 형 없으면 안된단 말이야!"
+++이건 후기
결국은 현중이 가족생겨서 좋겠구나, 되겠어효-_-
정확히는 김현중 빠돌이 2호 탄생?!! 원래는 저 후일담에 뭐, 정민이가 안그런척 하면서 현중이한테 아빠라고 부르고, 현중이는 좋아죽고, 규종이는 정색하며 시아버지지-_-뭐 그런 거였는데 정민이에게 현중 아빠라는 대사를 주니 순식간에 넘 개말스러워서 규종이가 버로우 탈 거 같은 관계로 그냥 삭제. 이건 규종이를 위한 거니까여^ㅂ^ 참, 정민이 그렇게 안 어려요. 고등학생 설정. 애가 쵸딩같아 그렇지-_-
이거 쓰는 동안 들은 노래는...
용필이 오퐈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아, 정말 애잔한 노래네요....
Posted by 케라v